Home > 주요 계속사업 > 청소년을 위한 무궁화 여름캠프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화(國花)인 무궁화는 그것을 어느
누구가 하루아침에 나라꽃으로 정하여서 된 것이 아니고
결코 짧지 않은 오랜 세월을 우리 민족의 꽃으로 불리워져 온 것이다.
선조 때부터 우리나라는 무궁화가 많이 피는 나라라는 뜻의
[근화향(槿花鄕)]으로 불리워졌으며 세종 때 강 희안이
지은 양화록에는 “무궁화는 전국 방방곡곡에 자생하며 꽃이 아름다워 우리나라를 근화향이요, 우리겨례를 근화 민족
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눈덮힌 겨울에도 언제나 푸르른 상록수와, 늦은 여름에 피어 오래도록 싱그러운 무궁화는 우리겨례가 오랜 세월을
같이 하여 보듬어온 우리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기에 끈기와
애국심을 청소년들에게 고취시키기 위함이었다.
무궁화 여름캠프는 1983년 6월 9일 이사회에서 [나라꽃
무궁화 찾기 운동]과 [상록수 뿌리 찾기]운동을 결의하고
이 땅의 청소년들을 집단 교육을 통하여 선도하는 일에
상록회가 전력을 다할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 하므로써
무궁화 여름캠프를 실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그 해 8월 5일 중부 교육청 산하 취약지역의 5개
초등학교(청구, 창신, 명신, 독립문, 봉래)에서 추천 받은
어려운 아동 150명을 대상으로 60명의 대학생 자원 지도
교사들과 경기도 가평의 두밀초등학교에서 2박 3일간의
제1회 상록회 주최 무궁화 여름 캠프의 막이 올랐던 것이다.
상록회의 무궁화 여름캠프가 청소년들인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제3회 캠프인 1985년도에 종탑 장학회의 장학생들인 중학생 105명을 참가시키고 부터인데
이후 제4회 캠프에는 136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특히 1989년도의 제7회 때부터는 영.호남 지역의 초/중학생 206명과 서울시가 추천한 소년소녀가장 50명, 미화원
자녀 50명, 구로 부녀복지회 연수생 90명 등 참가 인원 선정의 범위가 지방 학생들과 행정기관 차원의 보호육성 대상 청소년들에게까지 확대되어 그들에게도 상록회의 손길이 미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