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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과 함께 찾아온 국가적 무질서와 좌표를 상실한 사회적 환경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참담함 그대로였으며 살아야 한다는 필연적 욕구는 불신과 함께 적색사상이
종교처럼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확산되어 무정부적
위기상황이 도래되었으며 1950년도에 이르러 동서 양진영의 상반된 이데올로기의 깊은 골은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동족상잔의 6.25를 촉발시켜 잠시 잠깐의 해방의 기쁨은 조국분단과 처참한 국가적 파산이라는 무거운 멍애를 맞게되었고 도시와 농촌할 것 없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다.
남한만의 정부수립과 함께 유엔 및 미국등의 원조와 차관
형태의 눈물겨운 국가적 외교는 문자 그대로 형극(荊棘)의
몸부림이었으며 절박하고 암담한 시기는 7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이 무렵 한국 상록회는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자립,
자조, 자존의 구호를 외치며 41명의 발기인들이 모여 1970년
10월 28일 이정웅을 초대회장으로 선출하고 편성준, 강장수,
배두용, 김종규, 김원경, 나욱, 전석환, 김달수, 최은상,
임현장, 홍경숙씨등 12명의 임원과 함께 그 해 11월14일에
발기인 총회를 개최하여 [청년지역사회개발 상록회]를
출범시켰다. 정신적인 청년, 혈기 왕성한 청년의 모습으로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타개하고 국가와 민족 앞에 불변하는
푸르름을 선사하고자 했던 상록수 운동은 새마을 운동보다도
2년이나 먼저 시작한 나라사랑 운동으로 그 뿌리는 남궁억
선생의 나라사랑정신과 심훈 선생의 상록수운동에서
근원하였다.
한국상록회는 이렇듯 청년의 마음이 되어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삶을 펼쳐 보이리라 다짐하며 거치른 바다에 과감히
상록수함을 띄운 것이다.
상록회는 [내 마음을 믿는가?, 부끄럽지 않은가?, 남에게 무엇을 하였는가?] 라는 3대 강령을 활동의 지표로 삼고, 단체의
정신적 지주로 백낙준 박사, 윤일선 박사, 이청담 스님,
한경직 목사, 김두헌 박사, 김수환 추기경, 오재경 박사,
정재호 선생, 강신호 선생, 신봉조 선생, 손성찬 선생, 이성범
선생 등 사회각계의 어른들을 고문으로 추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