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연혁 > 상록수 운동의 변천
1970년대는 가난으로 학교공부의 시기를 놓친 청소년들을 위하여 [상록수의 집] 또는 [상록수 재건 학교]등의 이름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야간학교로 운영하였고 장학금
지원사업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향학열에 불타는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활동을 소리없이 전개하였다.
또한 영농기술을 농어민 후계자들과 지역인사들에게
교육시킴은 물론 정신적 이론적 무장을 위하여 합숙교육,
세미나등을 개최하여 자존(自存)하는 능력을 배양케 했으며 고아원, 양로원, 맹아원과 극빈가정(마을단위)을 정기적으로 순방하며 이발, 미용 무료봉사와 생활 필수품을 전달하는
활동을 전개하였고, 민, 군, 관의 협조하에 공동목욕탕, 공중변소 등을 설치하여줌은 물론 송아지, 돼지 등을 종자용으로 기증하여 증식시켜 또 다른 이웃에게 기증케 하므로써 자조 및 자립의 새로운 페러다임을 제시하였다.
1980년대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사회는 인간의 기본권과
생존권의 수호를 위한 여러 형태의 자구적 행동이 전국적으로 극심했던 시기이다.
민생안전과 국가재건이라는 큰 틀을 완성하기 위하여 정부는
중화학공업 우선 정책을 추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야기된
환경문제, 청소년 문제, 노인문제, 사도(師道)정립문제 등은
국가적 이슈로 대두되었다.
한국상록회는 활동방향을 대폭 수정하여 시대가 요구하는
환경보전운동, 청소년 의식개혁 운동, 해외동포사회의 조국에 대한 관심유도운동, 경로효친 운동과 함께 나라사랑,
이웃사 랑 사업인 전국적인 통일염원행사, 뿌리찾기행사,
청소년무궁화 캠프, 음악미술관련행사, 인간상록수 및
참스승 발굴 추대행사, 무궁화동산 및 무궁화거리 조성
사업 등을 전개하였다
1990년대는 사단법인 한국상록회가 성년이 되는 시기이다.
20여년 동안 우리는 여러 활동들이나 봉사활동들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 자”라는 자세로 철저히
[바보운동]이라는 숨은 봉사활동을 하여왔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관심거리가 되는 사안들을 가지고
대정부 투쟁이나 시위형식으로 활동을 하는 후발단체들 보다
오히려 정책적으로나 국가적, 국민적 관심도가 자연히
떨어 지게 되었으며 진정으로 순수하고 베일이 없는 범국민적 사업까지도 외면당하는 일이 발생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1990년대는 조금씩 조용하게나마 단체를 대외적으로
“알리고 인정받는” 활동사업을 전개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20여년간 사용하던 단체의 명칭을 [지역사회개발 상록회]에
서 환경부 공익법인으로 등록하면서 지금의
[사단법인 한국상록회]로 명칭을 변경시켰다.
2000년대의 상록회는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와 사회적,
환경적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솔선하여 주도하는 NGO로 거듭나야 될 것이다.
35년 동안 이 땅의 푸른 상록수로 그리고 세계 속의
명실상부한 친환경 NGO로 우리는 부끄럼 없는 봉사활동을
전개하여 왔고 이제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2000년대는
변화되고 깨어지는 대변혁의 힘든 과정을 거쳐야 될 것이다.
이미 상록회는 우수 민간단체로 선정되어 환경부장관 표창, 서울시장 표창, 국무총리 표 창, 대통령 표창 등을
본부와 함께 전국조직이 수상하고 있으며 대통령 영부인 초청으로 170명의 조직대표자들이 청와대를 방문한바 있다
그리고 향후 휴면상태에 들어있는 일부 지방 조직들을 새롭게 정비하여 부활시키는 활동과 함께 민간환경단체들과
연계한 환경보전운동, 미주지역 및 러시아 지역조직 강화 활동, 친 환경관련 수익사업 활동전개, 경인지역 신규조직을 추진중이다.
비상(飛翔)하는 독수리처럼 2000년대의 사단법인 한국상록회는 대한민국으로 부터 사랑 받고 인정받는
신토불이 한국의 봉사단체로 거듭날 것이며 세계 속으로 확산되리라 기대한다.
자연환경과 사회환경 개선을 위한 상록수 운동에 (사)한국상록회 본부를 비롯한 전국 상록회가 오늘도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